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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 대한 단상

by 현大인 2023. 4. 2.

편지지 고르는 즐거움 

 나는 어린시절에 편지를 좋아했다. 선물보다도 마음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편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예쁜 편지지를 모으는 것도 좋아했다. 학교 앞 문구점의 편지지 코너에서 서성거리면서 숨은 보물찾기 하듯이 예쁜 편지지들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했다. 편지지는 봉투 몇장과 같은 디자인 여러장의 편지지, 가끔 스티커가 포함된 비닐에 포장된 편지지와 봉투 세트, 편지지만 수십장 모아놓고 떼서 쓰는 편지지 모음집 같은 편지지도 있었다. 그 때 일주일 용돈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편지지 사는 데에 즐겁게 사용했던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 샀던 많은 편지지들 중에서 반도 못쓰고 집에 보관중이다. 다 쓰지도 못하면서 웬 편지지 욕심이냐고고 물으신다면. 이건 마치 덕질 하는 사람들이이 아이돌이 나오는 굿즈를 여러개 사놓고 일부는 쓰지 못하고 소장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싶다. 괜히 보고있으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그런것 아니겠나.

 내 편지지 취향은 한가지로 국한된것은 아니었고, 키치한 편지지나 화려한 것도 좋아하고, 심플한 스타일이나 모노톤같은 느낌도 좋아했는데,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내 나름의 미적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신상 편지지가 나오면 무작정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골랐던 기억이 있다. 심사숙고가 너무 길었던 탓인지 문구점 아저씨가 왠지 반갑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시기도 하셨던 것 같다.

 

편지의 대상

내가 편지를 썼던 대상은 크게 부모님과 친구로 나뉘었다.

 부모님께 연례행사처럼 어버이날과 생신 때마다 편지를 써서 드렸지만, 넘치는 마음과는 달리 편지를 쓸 때는 부모님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 지 항상 고민이 컸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그렇지 않을까? 같이 사는 부모님이라도 편지속에서 괜히 한 번 안부도 물어보고 말을 잘 듣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해 급격하게 구구절절 반성해가면서 편지 말미에는 좀 더 어른스럽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부모님의 말을 잘 들으리라 맹세하는 자신을 편지속에서 발견하게 되더란 말이다. 세상에 편지만 읽으면 이런 효자가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적인 행동의 변화없이 다음 편지에도 비슷한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 편지는 매년 반복된다는 함정이.. 있다. 진짜 감동은 부모님께 답장을 받을 때인 것 같다. 긴 내용은 아니었지만, 가끔 편지를 받으면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같은 학교를 다니며 일상을 함께 하는 친구들임에도 친구들에게는 편지나 때론 쪽지를 통해서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는 따로 상자에 넣어 친정에 보관하고 있는 중인데 한번씩 꺼내어 그 시절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한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친구들이 보낸 편지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 영 다른 사람같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반짝거림을 편지속에서 찾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 만난 편지

 이런 내가 커서 문구 디자이너가 된 것은 아니고,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잠깐 근무하다가 돈 맛을 보기도 전에 결혼을 해버리고 아이도 낳고 주부가 되어버렸다.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은 바쁘다는 이유로 편지를 잘 쓰지않고 쓰더라도 성의가 좀 없어진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일년전이었나, 오랜만에 옛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오랜만에 귀여운 캐릭터들이 포졸 옷을 입고 성문 같은 곳을 지키는 독특한 컨셉이 매력적인 편지지를 사서(집에 있는 많은 편지지는 결단코 친정에 있어서 쓰지 못한 것 뿐이다. 언젠가 쓸 것이다.) 카톡으로 주소도 물어서 보냈다. 중학교 때 나름 친했던 친구였고 아직도 카톡하면 나를 중학교 때 별명으로 부르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도 한 때 편지나 쪽지를 많이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자만, 갑자기 보내면 귀찮아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면서 써 보냈다. 

 이 친구의 편지를 부치러 오랜만에 우체국에 들르게 되었는데, 요새는 우표가 스티커 형식으로 나오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편지봉투에 표준규격이 있는데 이것보다 크면 추가요금을 내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그리하여 1천원 가량의 요금을 내고 조금 더 빠르게 가는 편지를 보냈다. 든 돈은 편지지 천원, 우편요금 천 얼마 해서 이천원 조금 넘는 돈이었다. 큰 지출도 아니었지만 받는 친구가 좋아하고 예쁘게 답장도 보내주어서 나도 엄청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후에 친언니와도 편지를 한번씩 주고받았는데, 둘 다 아이가 있어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 일상이야기 등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였지만 우편함에 든 편지를 봤을 때의 기쁨이 컸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에게 받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로도 충분히 마음은 전달할 수 있지만, 난 다른 메세지 전달수단들과 비교했을 때 편지 한통에 마음이 조금 더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쓴다는 행위의 빈도가 많이 줄어서인지, 아님 편지 보내는 상대방이 그만큼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어서인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나 역시도 쉬운일이 아님을 알아서인 것 같다. 첫머리를 쓸 때의 고민, 고치고 고쳐 결국 끝까지 쓰고 보내는 게 어찌보면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일수도 있지만 받는 이의 마음을 충분히 울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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